채널 256
ch.256
(2018)

블라디보스토크는 혁명과 강제이주라는 단편적인 단어로만 정의되는 곳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자연스럽게 혁명광장으로 발걸음이 향했다. 그곳은 러시아 혁명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자 고려인 강제이주가 시작된 곳이다. 두 개의 이야기가 물리적으로 중첩되는 곳. 이제는 관광객들에게 점령당한 혁명광장은 거대한 쇼핑몰들에 둘러싸여 그 용도가 변화했지만, 나의 못된 사고의 관성은 지금의 풍경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의 광장에 앉아 과거의 광장을 찾고 있는 이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생각하다 내가 늘 사진으로 해온 일이 그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거의 매일 광장에 나가 그 어긋난 시선들을 사진으로 확인하고 만난 사람들과 혁명과 강제이주에 대해 짧은 생각을 나눴다. 그 간극을 경험하는 일은 결국 무엇인가를 안다고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극적으로 무지를 생산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그 낙차를 인지하는 일은 현재를 과거화 하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알아차리는 과정이었다.

혁명과 강제이주를 다루는 민족주의적 접근이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아 시작한 삿대질이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혁명광장의 쓸쓸함과 번잡함이 조금씩 익숙해질 때 쯤 기어이 고려인 집성촌인 우수리스크의 풍경을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원인 기차를 타고 도착한 우수리스크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역시 비둘기의 배설물로 뒤덮인 레닌 동상을 지나 한적한 숙소에 도착했다. 호텔에 갇힌 채 창밖으로 보이는 마을의 풍경을 보면서 이것이 나와 이곳과의 좁힐 수 없는 거리인 것 같아 이내 씁쓸해졌지만 동시에 비릿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이 대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그것이 가능한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허무한 답을 거쳐 “그렇다면 나는 이곳에서 어떤 이해를 다시 생산해 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는 지난한 과정을 또 한 번 겪고 나서야 블라디보스토크의 매캐한 매연이 조금 익숙해졌다.

혁명 광장 한 구석에 앉아 거대한 서사를 한 덩어리로 선언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떤 장면 앞에서 너무 쉽게 가해와 피해를 규정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뒤엉킨 시간들을 개별의 사연으로 파편화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무엇하나 편하게 수긍하기 힘든 이 상황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고 무슨 말을 할 수 없는가에 다시 다달았다. 무엇을 알아간다는 것은 언어를 하나씩 잃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배회화고 바라보며 나의 말을 찾아보는 무용한 일을 멈출 수는 없을것 같다. 아직 세상에는 말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