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here, as if a blind person touches an elephant
(2015)
전시장소 : 공간 지금여기 /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23-617번지
참여작가 : 김민, 김재연, 김홍지, 변상환, 오보람, 유리와, 윤태준, 이의록, 임진실, 임태훈, 정정호, 조재무, 최요한, 허란
오프닝 : 2015년 3월 31일(화) 오후 6시
전시기획 : 지금여기 nowhere (김익현, 홍진훤)
포스터 디자인 : 물질과 비물질 http://watera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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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이유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결국은 사진을 둘러싼 삼라만상에 대한 오지랖이 우리(김익현, 홍진훤)를 이곳까지 오게 했다. 실체도 없는 ‘사진판’을 걱정한답시고 함께 마신 술들과 멀쩡한 ‘사진매체’의 생존을 고민하며 태웠던 담배들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오지랖-파생물들은 점점 축적되어 갔고, 공간을 운영할 만한 경제적 여유는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을 때쯤 창신동의 공간 ‘지금여기’는 무작정 시작되었다.
2014년 11월 임대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정식오픈을 준비하는 4개월 동안 전시 <살아있는 밤의 산책자>(기획: 이대범)가 열렸고 좌담회 <접속유지>(기획: 정언)가 열렸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헉헉거리며 창신동 고개를 올라왔고 도착하면 누구든 외투를 벗어던지고 물을 찾았다. 심지어 <접속유지> 좌담회 날은 140여명의 헉헉거리는 사람들이 ‘지금여기’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때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다시 굴뚝으로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물었다. “왜 사람들은 자꾸 오르게 될까?” “우리는 또 왜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왔을까?” 이 질문은 금세 ‘지금여기’ 개관전의 기획이 되었다.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인간의 욕망과 높은 곳으로 오를 수밖에 없는 인간들. 그리고 과거 채석장이 있었던 창신동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뒤섞은 나름 야심찬 사진전시 기획이었다. 한 달간 이 질문을 두고 둘이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작가를 찾았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반 만에 이 기획은 취소되었다. 우리가 생각한 이야기에 맞는 적당한 젊은 작가를 한 명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우리의 무능을 탓했다. 그와 동시에 혹자들이 우리에게 했던 말들을 상기했다. 이미 망한 사진판에서 뭐하냐는 농담 섞인 걱정과 아직도 사진하는 작가가 있냐는 우려 섞인 호기심을 떠올렸다. 공간의 영문 이름을 ‘here&now’가 아니라 ‘nowhere’로 정할 때의 대화도 다시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삶을 방문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 “ 무(無)에서 무(無)로 가는 도중”, “그리하여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같은 구절로 구성된 심보선의 시 <지금 여기>를 공간 한 벽에 붙여놓았다.
멈출 수는 없었다. “작업하는 젊은 사진작가들을 먼저 찾자!” 작가를 소개받고 그동안 봐온 전시를 기억해내고 전시 아카이브를 뒤졌다. 서로 다른 취향과 시선의 작가들이 한 명, 한 명 리스트업 되었다. 그들의 시선은 제각각 다른 곳을 향하고 있지만 서로 충돌하고 교차하고 때론 이어지면서 어렴풋하지만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듯.
윤태준은 자신의 기억을 담고 있는 사물들을 얼려서 사진으로 다시 박제하고 정정호는 얼음이 녹는 장면에서 사(死)에서 생(生)으로 회기하는 윤회를 떠올린다. 김재연은 자신의 어머니의 육아일기를 차용해 작물을 키우고 사랑을 떠올린다. 최요한은 아버지의 물건들을 바라보며 관계에 관해 고민한다. 오보람은 노모차에 의지한 노년 여성의 초상을 담담하게 마주하고 변상환은 오래된 골목 한켠에 놓인 돌덩이들에 빛을 비추고 이름을 부여한다. 유리와는 도심에서 자라는 나무들을 관찰하며 조재무는 텅 빈 광고판만을 응시한다. 이의록은 민주화 시절 보도사진 속의 익명의 존재들을 소환하고 임태훈은 관광상품으로 개발된 분단의 현실을 바라본다. 임진실은 남에서 북으로 날려 보낸 풍선들에 담긴 삐라와 물품들을 수집하고 김홍지는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물건들과 사람들을 기록한다. 김민은 시위대 채증용 카메라를 반대로 채증하며 사진의 폭력성과 이중성을 폭로하고 허란은 가리왕산의 잘려나간 나무들을 응시하며 강정, 밀양으로 이어지는 중심과 주변부의 간극을 살핀다.
작가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코끼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만진 이것이 코끼리의 모양이라 주장하는 이도 있고, 만져보았더니 이것은 코끼리가 아니라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코끼리 자체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또 어떤 이는 코끼리가 있든 말든 그것이 뭐가 중요하냐고 묻는다. 중요한 건 모두가 코끼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 발언자들의 말에 우리가 귀 기울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들의 파편적인 짐작이라도 없다면 우리는 코끼리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공간운영 3개월 만에 작가, 생활인, 운영자의 역할을 하게 된 ‘지금여기’의 공동운영자 김익현과 홍진훤, 즉 우리는 어느 하나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왜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지만 결국 우리도 더듬더듬 사진-공간-관계들을 만져보고 있는 중이다. 역시나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듯 말이다. 이런 무모하고 소심한 오지랖의 결과물로 운영자 둘과 작가 14명은 각자의 시선을 섞고 충돌시키고 이어 붙여 ‘우연히 방문한 삶’에서 마주할지도 모를 ‘눈 앞에 없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조상의 공덕이 높아 보이세요. 혹시 코끼리를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