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금지모드
Write Protect Mode (2015-2016)
내비게이션에 평택 대추리를 목적지로 입력하고 두 시간쯤 차를 몰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GPS가 가리키는 곳은 어두침침한 막다른 길이었다.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불 꺼진 주유소에 차를 대고 한 손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구글은 내가 가야 할 곳이 대추리가 아니고 노와리라고 알려주었다. 대추리는 노와리에 있었다. 링크가 깨졌다. 404 not found.
대추리(사실은 노와리)에 도착했다. 첫 방문이었다. 우선 볼 일을 마치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낯설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마을이었다. 국가에 의해 강제 이주된 후 허락된 마지막 땅에서 마을 이름조차 버리지 못하는 그들은 어떤 풍경을 꿈꾸었던 걸까. 마을이라 하기에도 어색하고 전원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집들이 겹겹이 쌓여 서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평택 미군기지 건설로 새로 생긴 이주마을 세 곳 중 한 곳인 두릉이주단지 입구에는 작은 비가 서있다. “꿈에서도 잊지 못할 정든 고향을 조국의 품에 안겨준 후 이곳 평택시 고덕면 두릉3리에 택지를 조성하고 이주, 정착하기까지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고 애쓰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표하며 본 공적비를 건립합니다.” 집만 미끄러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전국의 이주마을들을 조사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댐 건설, 핵발전소, 재개발, 군사기지 등등 강제 이주의 이유는 다양했다. 하지만 마을의 모양새는 이상하리만큼 동일했다. 사진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시각적 동질성은 어디서 왔을까. 그림 같은 집 따위의 수많은 이미지들이 머리를 스친다. 사진은 세상을 복제하고 세상은 사진을 복제한다. 의심이 짙어진다.
이곳저곳 제한된 공간과 시간, 그리고 자본 안에서 강제된 파라다이스가 복제되고 있다. 복제는 늘 열화를 동반하고 열화는 늘 오류를 생산한다. 하지만 더 이상 복제는 인지되지 않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열화의 풍경 앞에 서서 복제의 사이사이 생겨난 오류의 순간들을 잠시 발견하는 것뿐이다.
올해 초 새로 산 하드디스크에 기존 사진 파일들을 복사해 오고 있었다. 한 시간쯤 복사를 했을까. 갑자기 복사가 중단되었고 맥북 화면에 작은 경고 창이 하나 나타났다. “하드에 오류가 발생하여 쓰기금지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몇 개의 파일이 사라졌고 몇 개의 폴더는 링크가 깨졌다. 그래도 여기서 멈출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