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2015)

전시일정 : 2016.01.19(화) ~ 2016.04.05(화)
전시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1층

오프닝 : 2016년 01월 19일(화) 오후 5시
전시기획 : 지금여기 nowhere (김익현, 홍진훤)

포스터 디자인 : 물질과 비물질 http://watera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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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공간 ’지금여기’ 에서 진행된 첫 프로그램 접속유지(기획자 정언)가 열린 지 1년이 되었다. 한 해 동안 <지금여기, 장님 코끼리 만지듯>, <타임라인의 바깥>, <어쩌다 이런 곳까지>, 노기훈 개인전 <미장센>, 김혜원 개인전 <어제 감각>을 기획하고 전시했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갇혀 있는 시공간을 응시하고 꺼내 보이는 행위였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본 시공간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금, 여기의 시공간이기도 했다.

2015년은 괴상했다. 납작한 프로필 사진을 내건 “공간”들이 서로의 타임라인을 만들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사이를 스쳐 지나가며 잠시 모였다 금세 어디론가 흩어지곤 했다. 기존의 그것과는 다른 시간과 공간이 생겨났고 지금여기는 그 좌표 위의 한 점으로 부유했다. 그 이름도 다 기억할 수 없는 부유물들이 지금도 빠르게 생겨났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불과 어제의 일이 까마득한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고 어제와 오늘의 감각은 점점 무의미해진다. 오직 명확해지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가속되는 시공간뿐이다. 누구의 의도도 아니었지만 분명 모두의 의도였던 이 교란의 장에서 우리는 끝없이 미끄러지고 있다. 문제는 이 낙차와 그에 따른 어지러움을 멈출 방법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인 우연으로 스스로 나타났고 우리의 제어를 벗어났다.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주기적인 가속에 노출되거나 좌표계가 교란될 때 몸에서 나타나는 증상이 멀미라고 한다. 우리는 멀미를 느낄 틈도 없었는지 아니면 그것이 멀미인지도 모른 채 1년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야 우리는 그 가속도에 적당히 훈련되었고 이 어지러움 이 사실은 멀미임을 알아차렸다. 텅 빈 공간을 바라보며 되돌아보니 지금여기에서 1년 동안 진행된 전시들은 결국 우리의 멀미를 관찰하고 확인하는 시간들이었다. 그것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더듬거리며 짐작했던 어지럽게 교란된 시간들이었다.

다가올 2016년에는 이 멀미가 더 심해질 것만 같다. 생성이 가속되는 만큼 흩어짐도 가속된다. 우리의 좌표는 계속해서 왜곡되고 교란될 것이다. 부유물의 입장에서 결국 변하는 것은 좌표계 그 자체뿐이다. 분명 우리는 더욱 심한 멀미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멀미를 멈추는 방법은 단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기존 좌표계로 되돌아가거나 지금의 가속과 왜곡에 적응하는 것이다. 무엇이 옳은 방법인지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좌표 위의 존재는 좌표를 규정할 수 없다. 그저 우리는 이 가속도를, 이 교란을 버텨내고 적응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렇게 2016년은 우리에게 점점 심해지는 멀미를 참아내는 인내(endurance**)로써 존재할 것이다.

이 멀미를 함께 겪어온 작가들과 이번 전시를 통해 서로의 인내 방식들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때론 침울하고 또는 유쾌하며 한편으로는 무의미해 보이는 각자의 방식들을 확인하는 일은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고 의지를 공유하는 과정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일곱 명의 작가들과 두 명의 운영자는 제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인내하고 있다. 공석민은 더 나은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줄지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줍는다. 김혜원은 1분 1초도 보태거나 버릴 수 없는 상태를 오롯이 지켜보는 것에서 시작해 어제와 오늘의 간극을 인내하는 누군가의 멈춤을 응시한다. 변상환은 정과 망치를 집어 들고 좀 더 지금, 여기의 모습을 구체화하며 박제된 시간과 공간을 발굴한다. 안성석은 냉소에서 열정으로 변화할 수 있는 실천을 모색하고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너와 나, 그리고 그들 모두가 같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안초롱은 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 지에 집중하기보다 ‘그리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면서 왜곡된 자신의 환경 안에서 가능한 가장 적극적인 예술을 고민한다. 이의록은 손쉽게 눈앞에서 사라지는 수많은 이미지 데이터 중에서 2013년과 2014년의 진도 앞바다를 응시한다. 이미지의 거짓과 인간의 거짓을 들추어 우리가 시공간을 이해하고 그것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질문한다. 전상진은 딱히 용맹하지도 강인하지도 않았고 그런 척할 필요도 없었던 시간을 통해 지금, 여기 젊은 군상의 인내의 자세를 기록한다.

우리에게 이 시공간을 인내하면 언젠가 새로운 시공간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 따위는 없다. 웜홀을 통과하기 전에 다 사라져버릴 것을 알면서도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존재하지 않을 웜홀의 끝을 향해 부유한다. 그리고 그 난파선 위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멀미를 인내할 것이다. 우리에게 키미테는 없다.

* 1951년 시인 딜런 토마스가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쓴 시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라는 시의 제목이며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브랜드 박사가 우주로 떠나는 단원들에게 들려준 시 이기도 하다.

** 인듀어런스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위기를 맞은 지구의 대안적 시공간을 찾기 위해 웜홀을 여행하는 우주선의 이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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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바벨>에 참여한 전시입니다.

전경 촬영: 조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