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256
(2018)
홍진훤 <ch. 256>
2018.12.15-2019.01.27 (월요일 휴관)
강정평화센터 피스아일랜드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이어도로 594)
기획: 최혜영
주관: 강정친구들, 피스아일랜드
제주 해군기지 준공 후엔 처음 온다며 홍진훤 작가는 건물들의 조악함에 대해 토로했다. 조악하다는 뜻은 사전에서 ‘(물건의 상태가) 거칠고 나쁘다’고 정의한다. 단박에 알아듣진 못했다. 1.2km의 구럼비 바위를 파괴하고, 마을을 지키고자 한 사람들이 희생되며 지은 것이 고작 저런 콘크리트 건물들이냐고 다시 물었다. 기지 건물들을 보다가 기분이 상해 연락도 못하고 바로 강정을 떠나 왔다고도 덧붙였다. 그가 다시 강정마을에 방문했을 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물들의 조악함에 대신 사과하고 싶었다. 해군기지를 지은 것은 내가 아닌데. 제주 수선화를 꺾어 만든 다발을 건네고 냇길이소에 데려갔다. 강정에 대한 기억이 조악함이 아닌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란 오지랖이었다. 그는 여전히 강정 하면 조악한 건물들이 먼저 떠오를까. 제발 아니길.
홍진훤 작가의 작업들은 자주 존재의 부재함에서 오는 적막함, 허무를 이야기 한다. 반복되는 비극의 현장에서 이런 풍경들도 괜찮냐며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괴기한 개발의 풍경들은 ‘과거의 부재’와 ‘스스로 부재될 운명을 존재로써 증명’하고(『임시풍경』), 학살 혹은 희생의 현장을 찾은 그가 발견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던 “곳”이 아닌 역사 그 자체로 퇴적되어 생존한 “것”(『붉은, 초록』)’이었다. ‘덧없는 표류의 애잔한 기록’(『마지막 밤(들)』)과 ‘있어야 할 것의 없음’을 ‘알아차’리는 일(『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은 질주하는 시간 안에 망각된 ‘누군가의 부재를 증명’하는 기록이다.
『붉은, 초록』 도록에서 처음 홍진훤이라는 이름을 만났다. 사진 속 강정의 풍경들은 낯설었다. 오키나와, 밀양, 후쿠시마로 이어진 풍경들이 오히려 더 익숙했다. 오랜 시간 강정에 살며 싸우며 뜯겨진 풍경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강정에 살면서 자주 언어를 잃었다. 사라지는 풍경과 사라지는 사람들과 살아지는 장면 속에서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슬픔은 명랑하게’(*허수경, 「나는 춤추는 중」) 왔다. 잃고 사라지는 것들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또 다른 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강정투쟁 11년 동안 지나쳐간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투쟁이, 운동이 졌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사람들이 버티고 있기에 끝은 없다. 강정의 투쟁 풍경은 이전의 다른 현장과는 달랐다. 자발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의 먼저를 온 미래를 살아냄으로 지속하고 있다. 잃어버린 언어를, 목소리를 다시금 찾는다. 그것은 때로 강정에서는 춤이거나 시나 그림이 된다.
폭염이 지속된 2018년의 여름, 쉼인지 새로운 작업인지 모를 러시아로 떠난 홍진훤 작가는 언어가 부재한 상황에 놓여졌다.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기호들의 나열로 제목(『✈☆☂☞☭☺♕⚒♖♘☃♡♬✞⚔』)을 지어 러시아에서 전시를 했다. 궁금했다. 왜 그는 러시아에 갔을까.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매일 혁명광장을 부지런히 다니며 그가 본 것은 무엇일까. 셀카봉을 들고 한차례 광장을 쓸고 지나가는 한국 관광객들,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중국인 관광객들, 관광객들이 던진 부스러기를 먹는 비둘기 떼, 작은 깃발을 든 젊은 가이드 남성이 잘못된 정보를 설명해도 아무도 개의치 않은 모습,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와 러시아 혁명에 대해 짧게 설명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나면 건너편 유리로 장식된 중앙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는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 반복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지역 케이블 방송 256번은 24시간 혁명광장을 CCTV로 비춰주는 채널이라 했다. 작가는 혁명광장에 나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거나 숙소에서 채널 256번을 통해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광장 속 CCTV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일까. 안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일일까. 보이는 것을 다 알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을 흐릿하게 보는 일. 그가 러시아에서 한 일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