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일상다반사
Unusual variation
(2018)

2018 우민극장 <비일상다반사>

기 간 : 2018년 3월 28일 수요일 - 6월 9일 토요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매주 일요일 휴관
장 소 : 우민아트센터 전관
분 류 : 2018 우민극장
제 목 : 비일상다반사
참여작가 : 김세진, 서평주, 옥정호, 장서영, 차재민, 홍진훤
기 획 : 조지현
주 최 : 우민아트센터
후 원 : 우민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8 우민극장 <비일상다반사>_ 비일상적 일상에 대한 냉소적 유희

전시는 언어의 수사법 중 하나인 형용모순(oxymoron)이 예술의 문맥으로 해석하였을 때 현실과 삶의 문제에 관한 관심을 어떻게 드러내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형용모순(形容矛盾, oxymoron)이라 함은 서로 모순되는 어구를 나열하는 표현법으로 두 가지 어휘가 모순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결합되어 있는 쉽게 말해 ‘갈등하는 동맹’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형용모순은 ‘이항 대립’(binary opposition)이라는 기존의 이성 중심주의적 사고(선/악, 천사/악마, 전/후, 남/여, 노/소)의 배제와 억압의 구조를 전복한다는 측면에서, 조합되는 어휘들의 위계질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낯설게만 보이는 이 언어학적 수사학의 일종인 ‘형용모순’의 양가성을 내포한 단어는 프레더미(friend+enemy), 코피티션(cooperation+competition), 디지로그(digital+analog), 심플렉시티(simple+complexity), 글로컬라제이션(global+localization)과 같이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상반된 가치와 개념이 대등한 힘을 갖고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형용모순’이 늘어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한때 대선후보로 거론되었던 한 정치인은 그 자신을 ‘진보적 보수주의자’라 칭했다. 그의 ‘반반 어법’은 대표적 ‘형용모순’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진보, 보수 양쪽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려는 노력이라고 이해해 볼 수도 있겠으나 핵심 쟁점을 교묘하게 회피하려는 의도나 흐릿한 처신에 대한 변명처럼 비쳤던 건 사태를 바라보는 이들의 편파적 시선 때문만은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일상 속에 잠복해 있던 현실의 모순과 불화(不和)의 지점은 ‘형용모순’적 수사의 힘을 빌려 구체화 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전시는 양극적 현실의 단면이라 할 수 있는 ‘형용모순’적 특성을 내용적, 형식적으로 함의하는 영상을 상영하거나 역설적 상황을 모티브로 삼는 작업들을 비선형적으로 구성하고자 한다.

김세진의 <밤을 위한 낮>은 급격한 속도로 이뤄지는 도시개발의 역풍으로 인해 한때, 찬란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슬럼 지역으로 전락한 한 동네와 그 동네 전면에 위치한 KTX 본사 건물의 풍경을 화면에 담아낸다. "초고속"과 "성장"을 상징하는 KTX의 속도 이면에 버려진 과거로서의 "폐허"의 공간을 컬러 프레임과 사운드, 분절된 싱크와 같은 영화적 미장센을 통해 ‘시각적 서사’로 구현한다. 제작비용과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낮 시간에 밤 장면을 촬영하는 "Day for Night"이라는 동명 제목의 영화 기법처럼 영상은 낮의 민낯을 완벽히 가리지 못한 옅은 밤의 명도가 만들어내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듯한 스산한 경계지대의 언캐니한 공감각적 심상을 소환한다.

서평주의 <새천년 생명체조>는 고리 원전을 배경으로 실제 군대에서 실시되는 '핵폭발 시 대처요령'에 맞게 체조를 하는 여성의 모습을 포착한다. 현실의 위기와는 한참 동떨어져 보이는 몸짓으로 체조를 하는 인물에게 초점이 맞춰진 화면은 대규모 재난을 다루는 우스꽝스러운 대처방식에 대한 냉소와 함께 재난 예방 시스템의 취약성을 우회적으로 고발한다. 작가는 이로써 우리의 삶과 생명이 얼마나 면밀하지 못한 국가 재난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옥정호는 하얀 쫄쫄이를 입고 진지한 태도로 제자리 뛰기를 하거나(사진), 러닝머신 위에서 실패의 몸짓을 반복하는(영상) 인물로 등장하여 엄숙한 권력과 자본들의 기호들 사이에 ‘이물스러움’ 자체로 도드라진다. 작가는 몸으로 직접 쓴 기호로 ‘세계의 비참’을 엉성하게 흉내 내어 보이지 않는 현실의 벽을 가시화하거나 현실 자체를 무력화하는 몸짓으로 일상 속에 친연화된 상징들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한다.장서영은 지표나 흔적으로만 가시화되거나 불안전하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호명되지 못한 타자들, 조직화된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비가시적 존재들이 품고 있는 공허감과 불안을 미완료 움직임, 로딩 중인 신체를 통해 표현해 왔다. 작가는 존재와 부재 사이, 실존과 인식 사이의 무수한 불확정성과 미결정성을 내포한 마이너리티들에 주목하면서 삶이라는 거대한 운명 앞에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던져진 존재가 필연적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 공허의 정서를 무력하고도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드러낸다.

차재민의 <TWELVE>는 각종 자료를 토대로 2015년 최저임금위원회의 토론 내용을 대본으로 삼아 12명의 등장인물이 열두 번의 회의를 재현한다. 공적이고 투명해야 할 토론 행위가 갈수록 밀실과 사적인 공간에서만 성립되는 현상을 드러내며 미래의 국가와 민주주의가 어떠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신자유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자발성의 의무’, ‘열정의 제도화’와 같은 형용모순이 제도로, 심지어 도덕으로 선포되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자발이 의무가 되고 일에 대한 열정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아도 될 이유로 둔갑해버리는 ‘열정 페이’의 역설처럼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 모순이 드러나며 인간의 실존 문제와 직결되는 ‘노동자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홍진훤의 <마지막 밤들>은 속도의 단절과 ‘유예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 찾아간 휴게소의 밤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구겨진 몸을 쉬게 하거나’, ‘숨을 고를 수 있다’고 기대하던 곳에서 오히려 속도에 떠밀려 버린 존재가 모여 사는 외딴섬의 모습을 발견한다. 인공조명 아래 기이한 자태를 드러내는 정치적이거나 프로파간다적 기호들로 얼룩진 휴게소의 광경은 작가가 찾고자 했던 장소의 영원한 부재를 확인한다.

2018 우민극장 <비일상다반사>는 단순히 ‘형용모순’을 동시대적 특성으로 규정하여 세계의 모순성, 현실의 양극적 특성을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외려 ‘형용모순’이라는 자가당착적 기획이 가지고 있는 포스트모던적 특성 즉, 이종결합과 불확정성, 아이러니, 상호텍스트성, 상호모순성이 범주 간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일 수 있음에 대해 재고하길 제안한다. 이로써 형용모순적 수사로 점점 더 불투명해지는 현실과의 새로운 의미와 관계를 재발견해 나갈 수 있는 기회임을 인식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