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id you end up in place like this
(2015)
오후 1시 ~ 7시 / 월요일 및 추석연휴 휴관
전시장소 : 공간 지금여기 /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23-617번지
참여작가 : 안초롱, 이우기, 이지양, 이창근, 임흥순, 주용성, 홍진훤
오프닝 : 2015년 9월 21일(월) 오후 7시
전시기획 : 지금여기 nowhere (김익현, 홍진훤)
포스터 디자인 : 물질과 비물질 http://waterain.kr
** 전시제목은 구탁소 송민정님이 지금여기에 방문해서 해주신 말입니다.
"어쩌다 이런 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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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70m에 위치한 이곳 <지금여기>에 사람들이 헉헉 대며 올라와 땀을 훔치며 물을 찾는다. 고맙고 신기한 풍경이다. 그런데 이 힘든 곳까지 이들은 왜 올라오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이리 높은 곳에서 고생을 생산하고 있는것인가? 올해 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공장굴뚝에서 내려왔다. 밀양의 어르신들이 산에 올라 쫓겨 내려온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용산 남일당 빌딩에도 사람들이 올랐고 성적을 비관한 아이들은 여전히 아파트 옥상으로 오른다. 어떤 사내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마포대교 위로 올랐고 어떤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위해 절벽을 오른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이곳에 선 것인지 아니면 서게된 것인지 그것 조차 명확하지 않다.
‘오르다’ 라는 능동적 행위가 피동적 상태에 놓이게 되었을 때 마주하게 될 풍경은 어떠할까? 노동자 김주익이 크레인 위에서 본 하늘과 땅, 노동자 이창근이 공장 굴뚝 위에서 본 하늘과 땅은 서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난장이는 왜 하늘로 공을 쏘아 올렸으며 현실의 막다른 길에서 우리는 왜 우리 스스로를 하늘로 쏘아 올렸을까? 그렇게 우리가 떠난/떠밀린 땅의 시간들을 애써 어떤 모습으로 묻어 두었는가? 그리고 왜 또 묻었던/묻혔던 것들은 기어코 중력을 거슬러 올라와 다시금 우리에게 풍경을 선사하게 되는 것일까?
한편에서는 더 높은 곳을 정복 하려는 높이를 향한 경쟁이 끝없이 펼쳐지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내려오기 위해 오르는 아찔한 풍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혹자는 현실에 떠밀려 오르게 되는 피동의 상태에 집중하고 누군가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오르는 능동의 상태에 집중한다. 무엇이 옳든 지금,여기는 높고 사람들은 오른다. 여전히 목이 마르고 내리막은 언제나 위태롭다. 두 발을 지탱할 곳은 너무나 좁고 올려다 본 하늘은 너무나 넓다.
끝.